질투는 나의 힘 한강이야기


지나고나서 돌이켜보니 어린시절 나는 질투심이 아주 강했다.
첫번째 질투의 대상은 네 살 어린 동생이었다.
내가 아이를 둘 낳고서야 고백하건데 둘째는 그저 아무 이유없이 예쁘다.
하지만 4년 동안 사랑을 독차지하던 다섯 살 어린 아이는 그걸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직도 외할아버지가 동생을 격하게 반기며 예뻐하던 모습.
엄마가 동생한테만 아가야, 우리 아가 하고 부르던 모습.
동생의 하얗고 토실토실한 볼을 부럽게 바라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동생만 다니게 된 장난감이 가득했던 어린이집.
발레를 배운다며 입던 분홍 레이스 발레 치마.
또 그 후에 배우던 광이나던 플룻까지.

어찌나 질투가 났던지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에 아빠가 슬쩍 우리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가면
슬며시 일어나 내 선물과 동생의 선물을 풀어보고 비교해보던 기억도 난다.
항상 동생의 선물이 더 좋아보였지.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울면서
엄마는 동생과 떠날테니 너는 아빠랑 가서 살라고 외칠 땐 정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동생을 더 사랑하는거 같아서.

엄마의 사랑에 고팠으리라.
나는 동생보다 사랑을 더 받기위해 고분고분 엄마 말을 잘 들었고,
공부를 열심히 했고, 동생의 모자란 점을 헐뜯었다.
어찌보면 내 동생도 이 비극적인 상황에 피해자다.

동생이 더 이상 내 질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난 같은 반 친구들을 질투했다.
나보다 얼굴이 예쁜 친구, 나보다 인기가 많은 친구, 나보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
하지만 티가 나선 안되었기 때문에 속으로 나 혼자.
평생을 스스로 불구덩이에 집어넣은 셈이다.
혼자 질투하고 채찍질하고 좌절하고 혹은 자만심을 느끼고.
이 모든 것이 혼자만의 세계였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어린 시절보다 덜 하지만 여전히 질투를 한다.
나보다 결혼을 잘 한 여자. 부유한 여자. 남편 직업이 좋은 여자.
애가 둘인데도 몸매가 좋은 여자. 얼굴이 예쁜 여자.
복스럽게 먹는 아이를 둔 여자. 똑부러지게 살림하는 여자.
아이들 교육도 모자람없이 시키는 여자.

어느 순간 질투의 감정이 화르륵하고 들때면 상대적 열등감에 좌절하기도 한다.
나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기에는 자존감이 많이 부족한걸까.
황당한 것은 내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좋은 직업에 좋은 남편, 좋은 집, 좋은 외모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은 너가 뭐가 아쉬워서.. 라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질투들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힘이었다는건 인정하지만
이제 그만 좀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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