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 읽는이야기

42.195킬로미터를 어떻게 달릴 것인가

이런 상상을 해보자. 누군가 나타나 42.195킬로미터를 뛰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당신을 협박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이번엔 이런 상상을 해보자. 멋진 운동화와 스포츠용품을 구입해 몇 달 동안 엄격히 훈련한 뒤 처음으로 마라톤을 완주한다. 결승점에서는 당신을 기다리는 가족과 친구과 환호를 보낸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아닐까.

똑같은 사람이 똑같이 42.195킬로미터를 뛰고 똑같이 고통이 온몸으로 퍼진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해 준비했을 때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고, 억지로 했을 때는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경험이 된다. 둘 사이를 가르는 건, ‘이건 내 선택이니 내 책임이다라는 마음가짐이다. 지금 비참함을 느끼고 있다면, 아마도 그건 현재 상황의 일부를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내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내 선택과는 무관하게 억지로 떠맡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문제는 내가 선택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에너지를 느낀다. 반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문제가 강요되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부당함과 비참함을 느낀다.

 

어떤 것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언젠가 죽을 거라면 두려움이나 민망함, 수치심 따위에 굴복할 이유가 없다. 이것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짧은 인생 대부분을 고통과 불편함을 피하는 데 써버린 나는 사실상 삶을 피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삶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한다. 삶을 충실히 사는 사람은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 자신이 결국 소멸하리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해보는 게 중요한 이유는, 그 행위가 덧없고 피상적인 엉터리 가치를 삶에서 싹 없애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돈을 더 버느라, 명성을 조금 더 얻고 주목을 조금 더 받느라, 또는 자기가 옳거나 사랑받고 있다는 걸 조금 더 확신하느라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축내는 동안, 죽음은 우리에게 훨씬 더 고통스럽고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우리는 다 죽는다. 우리 모두가. 저런!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생의 사소한 문제에 벌벌 떨고 기죽는다. 아무것도 아닌 게 우리를 먹어 치운단 말이다.